오늘 일본한자능력검정 8급 시험을 치렀다. 나와 한자와의 1차전.
올 초 세웠던 계획 중에 한 가지는 한자 공부하기였다. 이제까지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시험 같은 장애물이 없어서 그런지 진전이 없었다. 하는 둥 마는 둥…, 이번엔 시험이란 장애물을 넣어두고 공부를 하기로 했다. 이참에 내 수준도 확인하고 싶기도 해서 한자능력시험 8급에 도전하기로 했다. 8급이면 사실 일본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지만 나에게는 꽤 어려운 도전이다.
학교 다닐 때도 한자 포기자였고, 한자 거부 알레르기처럼 한자만 보면 졸리고, 외워도 돌아서면 까먹는 사람 중에 한 명이기에 한자 시험 도전은 힘든 결정이었다. 중학교 이후로 한자를 쓰며 외우며 다시 공부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는데 사람 일은 진짜 모르는 일인 것 같다. 내가 한자 시험공부라니~~.
일본한자능력검정은 일본에서도 꽤 알아주는 시험 중에 하나로 1년에 3번의 시험이 있고, 10급부터 1급까지 단계가 있다. 이번년도는 2월 16일/ 6월 21일 / 10월 18일에 시행되었는데. 1월 초쯤에 인터넷으로 2월 16일에 있는 시험에 접수를 했다. 응시비는 1,500円.
일본한자능력검정 사이트에서 자기 수준을 체크하는 예시문제가 있는데 재미 삼아 풀어보니 10급이나 9급도 꽤 헷갈렸다. 그래도 도전이니까 8급을 보기로 했다. 초등학생 3학년 정도의 수준이니 괜찮겠지. (나중에 어려워 급 후회했지만)
일본한자능력검정 단계
10급 – 초등학교 1학년 수료 정도 (80자)
9급 – 초등학교 2 학년 수료 정도 (240자)
8급 – 초등학교 3 학년 수료 정도 (440자)
7급 – 초등학교 4 학년 수료 정도 (640자)
6급 – 초등학교 5 학년 수료 정도 (825자)
5급 – 초등학교 6 학년 수료 정도 (1006자)
4급 – 중학교 재학 정도 (1322자)
3급 – 중학교 졸업 정도 (1607자)
준2급 – 고교 재학 정도 (1940자)
2급 – 고등학교 졸업 · 대학 · 일반 정도 (2136자)
준1급- 대학 · 일반 정도 (약 3000자)
1급 – 대학 · 일반 정도 (약 6000자)
8급 시험 책을 구입하고, 책을 보는 순간 헉 이건 아니지 싶었다. 이게 초등학생 3학년 수준이라니. 공부하는 순간부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냥 포기할까? 꼭 필요할까? 하면서 게다가 쓰기 시험문제도 있다니 한자 읽을 수는 있어도 쓰기는 쥐약인데 ㅠㅠ
8급의 문제 출제유형은 한자 읽는 방법, 한자쓰기, 한자 획수알기, 오쿠리가나 알기의 유형이다. (오쿠리가나는 한문을 훈독하기 위하여, 한자의 오른쪽 아래에 달아 읽는 법을 표시한 것). 한자 읽는 법도 어렵고 획수는 더욱 헷갈리고, 쓰기는 더욱 어렵다.
일과 병행하면서 틈틈이 쓰고 보고 외웠다. 죽어라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쬐금 노력했다. 공부를 하면서 내 머리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외웠던 단어도 다음날이면 생소하게 느껴지는 내가 한심해서.
시험 일주일 전에 수험표가 도착했다. 시험 장소와 수험번호가 적힌 엽서였다. 준비물은 수험표와 샤프 또는 연필(HB, B, 2B), 지우개. 연필과 지우개를 준비하라니 아날로그적인 이 너낌.
시험 당일, 메지로대학교로 가는 길이 예전 수능 보던 날과 오버랩되어 조금 신선한 느낌이었다. 이런 긴장감도 나쁘지 않다. 복도에는 시험을 치르려는 초등생들과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남들이 보면 나를 학부모로 보았을 것 같다. ㅎㅎ
교실 안에 들어가 정해진 자리로 가니 내 이름과 접수번호가 적힌 문제지가 놓여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초등학생들이라 조금 뻘쭘해지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시 시험 문제를 풀자마자 안드로메다로 ~~ 평소에 알던 단어였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 황당한 순간도 있었다. 어찌어찌 시험을 보긴 했는데 결과는 모르겠다. 시험을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시험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시험을 끝내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기특하고 예뻐보였다.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일본한자능력검정을 준비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이 많아져서 공부할 시간이 좀 부족했지만 틈틈이 공부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어주었고, 시험보는 긴장감이 나쁘지 않았다. 왠지 활기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이루었다는 느낌도 좋다.
남들이 보기엔 뭐 그리 거창하게 생각하나 싶지만 나에겐 의미 있는 경험이다. 앞으로 계속 공부해서 올해 4급까지 도전해봐야겠다.
시험이 끝나서 나오는 길에 신랑이 호빵 2개를 사들고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행복. 신랑은 나보다 한시간 전에 2급 시험을 치르고 오는 길이었다. 2급이라니 후덜덜. 부부가 같은 날 시험을 보고 같이 돌아오는 오늘의 이 기분 잊지 못할 것 같다.
늘 배우고 도전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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